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브 루스 (문단 편집) === 은퇴 === 은퇴 후 감독을 하려 했으나, '스스로를 컨트롤하지도 못하는 인간이 팀을 감독한다고?' 라는 평이 대다수라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. 실제로 선수 시절에 개인 관리가 잘 안 되어 술도 자주 마시고, 경기중 심판한테 대들다가 퇴장당했으며 이를 찍던 기자 멱살을 잡고 내던지는 일도 벌였다. 당연히 기자들이 신나게 기자 폭행이라고 1면으로 까면서 언론과 사이가 한동안 나빴다. 그나마 나중에는 그 기자를 술자리에 초대하여 사과하고 화해하기도 하고, 기자들을 배려하면서 슬럼프에 빠진 그가 열심히 운동하는 것에 기자들이 루스가 최선을 다한다고 긍정적으로 보도하기도 한다. 아무튼 여러 모로 말이 많았고, 말년에 [[애틀란타 브레이브스|보스턴 브레이브스]]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도 성적이 안 좋았다. 은퇴 후에는 잠시 [[로스앤젤레스 다저스|브루클린 다저스]] 코치를 했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. 이후 [[명예의 전당]]에 [[최초의 5인]] 중 한 명으로 입성했다. [[파일:external/1f86af166ccefcf76572e21bf717ee614686ec5e4d147d02c8b20e8c5a2c5aab.jpg|width=650]] 1948년 8월, 병원에서 후두암으로 타계했다.[* 죽기 전에 후두암으로 고통받았는데 왼쪽 눈과 목이 심한 통증에 시달린데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며 체중도 급격하게 감소했고 걷기가 힘들어 지팡이를 짚어야할 정도가 되었다.] 장례는 성 패트릭 성당에서 진행되었고 시신은 그곳에 묻혔다. 그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무려 7만명이나 되는 조문객들이 와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. 위의 사진은 루스가 타계하기 불과 2개월 전인 그해 6월, [[양키 스타디움]] 개장 25주년을 기념하는 초청 행사에서 찍힌 것인데, 이것이 루스가 마지막으로 팬들 앞에 모습을 보인 자리였다. 루스의 뒤쪽에서 촬영하여 그의 상징과도 같은 [[등번호]] 3번과 그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중 수만 명을 함께 보여준 것이 포인트. 이듬해인 1949년, [[퓰리처상]] 보도 사진 부문을 수상했다. 당시에 이미 건강이 매우 나빠져 있어서(루스는 1946년경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) 자세히 보면 야구 배트를 지팡이 삼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